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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포커스 - 특별기고1('21노사관계 전망과 과제)

작성자 관리자 | 날짜 2021.05.17

21노사관계 전망과 과제

이정(한국외국어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적막강산(寂寞江山). ‘앞일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답답한 지경'이라는 뜻으로, 대표적인 취업포털 사이트가 뽑은 올해의 사자성어다. 코로나가 덮친 지난 한해를 돌이켜보면 그야말로 격동의 세월이었다. 코로나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재택근무와 비대면회의가 일상화되고, 직장인들의 일상은 상상도 못할 정도로 바뀌고 있다. 매년 이맘때면 송년회 등 모임으로 북적대던 오피스가 골목엔 마스크 등으로 중무장한 행인이 가끔 지나칠 뿐 인적이 드물다. 최악의 고용한파에 내몰린 소상공인들과 자영업자들은 생사의 기로에 서있고, 취업절벽에 내몰린 청년들 얼굴에서는 생기를 찾을 수 없다. 이런 가운데 오로지 단 한곳 여의도 국회의 풍경은 사뭇 다르다. 이달에 들어서만 노동 관련 법안을 포함하여 수백 건의 법안을 처리할 정도로 그야말로 입법성시를 이루고 있다.

2020년 12월 9일. 이 날은 노동계의 최대 현안이었던 노동조합법, 공무원노조법, 교원노조법 개정안 등 소위 노조 3법을 비롯하여 7개 노동관련 법안이 국회문턱을 넘은 기념비적인 날이다. 이들은 모두 기존의 노사관계 틀을 완전히 바꿀 정도로 쟁점이 많은 법안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회에서는 공수처법, 국정원법 등 권력기관 개혁을 우선입법과제로 내세우면서 노동관련 입법은 뒷전으로 밀려나, 제대로 된 토론이나 공청회도 거치지 않고 거대 여당의 입법폭주로 마무리되었다. 대통령의 임기를 1년여 남겨둔 시점에서 공약사항을 이행하려는 의도로 짐작되나, 벌써부터 졸속입법에 따른 파열음이 나오는 등 향후 노사관계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이번 노조 3법의 통과는 1991년 ILO에 가입 이래 가장 획기적인 일이다. 그 중에서도 해고자 · 실업자를 비롯하여 5급 이상 고위 공무원과 소방대원도 노조에 가입할 수 있도록 한 점과, 노조전임자에 대한 급여금지 규정을 삭제한 점은 다소 파격적이다. 이로써 공공부문의 노동운동이 한층 활성화되리라 전망된다. 특히 이번 개정으로 전교조 해직 교사들의 노조가입을 둘러싼 해묵은 갈등이 해결될 수 있는 실마리를 마련하게 되었다는 점은 퍽 다행스런 일이다.

한편 해직자의 노조가입은 허용하되 사업장 출입의 제한 및 생산시설 쟁의금지를 규정한 정부안의 단서조항이 삭제되어 뒷맛이 개운치 않다. 특히 이번 노조법 개정에서는 쟁의행위 시 대체근로 허용 및 부당노동행위 처벌규정의 선진화가 가장 뜨거운 감자 중의 하나였는데, 입법에는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이는 경영계가 해고자 · 실업자의 노조가입 등을 양보하는 대신 최소한의'방어권'차원에서 주장한 것인데, 이에 대해서는 제대로 논의조차 하지 않아 전반적으로 균형을 잃은 입법이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현 정권하의 기울어진 노사관계는 이번 노조법 개정으로 더욱 경도된 듯하다. 문제는 이게 끝이 아니라는 거다. 아직도 중대재해기업처벌법과 같은 더 센규제법이 국회문턱에서 기다리고 있다. 게다가 상법, 공정거래법, 금융그룹 감독법 등의 제 · 개정안 등 이른바 공정경제 3법까지 통과됨에 따라 기업을 둘러싼 고용환경이 결코 녹록치 않다. 정부는 최근 내년 경제성장률 목표치를 3.2%로 제시한 다음, 재정을 풀어 104만개 공공일자리를 만들겠다고 호언하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사태의 장기화로 실물경제가 빈사상태인데 과연 가능할지, 또한 천문학적인 재원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도 불투명하다.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어려움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2021년부터 주52시간제가 중소기업에도 적용되게 되면, 근로시간이 주당 최대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급격히 단축되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산업현장에서는 적지 않게 혼란이 발생하기라 예상된다. 이 중에서도 특히 300인 미만의 중소기업이 집중되어 있는 제조업에 있어 생산직의 근로시간 감소는 필요한 인력 확대와 추가 비용 부담의 증가 등으로 회사에 치명적 타격을 줄 수 있다. 근로시간 단축이라는 당위성에 대해서는 대체로 공감하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의 영향으로 경영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이를 준수하기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최근 들어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정보통신기술(ICT) 발달로 디지털 플랫폼을 매개로 하는 노동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디지털혁명이라 고도하는 소위 '4차 산업혁명'의 영향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코로나사태가 장기화되면서 플랫폼고용에 종사하는 사람이 급속하게 늘어나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배달대행이나 대리운전 등 모빌리티 산업에 국한되던 것이 이제는 법률상담이나 부동산 소개 등 다양한 분야로 확산되는 추세다. 문제는 이처럼 플랫폼 고용에 종사하는 경우에는 기존의 노동관계법이 적용되지 않아 고용이 불안할 뿐만 아니라 산업재해 등에 노출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에 최근에는 플랫폼 종사자를 위한 보호법을 별도로 제정하고 공제회 설립을 추진하는 등 플랫폼 종사자를 위한 종합적인 대책을 세우고 있다. 하지만 플랫폼종사자라 해도 스펙트럼이 너무나 다양하기 때문에 통일적이고 일관된 보호대책을 수립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2021년 노사관계를 둘러싼 이슈는 그야말로 복잡 · 다양하다. 무엇보다 코로나사태가 장기화 및 백신확보의 지연은 향후 노사관계에 매우 부정적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된다. 코로나라는 거대한 쓰나미는 여행업과 항공업을 집어삼킨 후 금융, 제조업에 이르기까지 실물경제까지 위협하고 있어, 향후 노사관계는 더욱 불안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사회가 오늘의 어둡고 긴 터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코로나 방역도 중요하지만,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고 사회안전망을 더욱 촘촘하게 정비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결국 양질의 일자리는 민간 기업에서 나오는 만큼, 코로나로 위축된 기업들을 더욱 옥죄는 입법은 가능한 자제해야 한다. 기업규제를 늘려가는 덧셈입법으로는 더 이상 생산적인 노사관계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