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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포커스 - 특별기고2(중대재해기업처벌법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작성자 관리자 | 날짜 2021.05.17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정진우 교수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인(중대재해법안)의 가장 큰 특징은 안전에 대한 비현실적이고 지나치게 ‘포괄적이고 불명확한 의무’를 부과하고 있는 점과 ‘엄벌주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은 헌법의 원칙(명확성의 원칙, 책임주의원칙 등)에 위반되는 문제가 있을 뿐만 아니라, 산재감소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된다.

법문이 애매모호하고 불명확하게 규정되어 있으면, 수범자가 당해 법률에 정통한 지식을 가진 사람의 의견이나 조언을 구하여도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를 도저히 정확히 예측할 수 없어, 수범자에게 행동지침으로 작용하지 못하고 법집행자에게도 객관적 판단지침을 주지 못하여 자의적이고 차별적인 법해석이 이루어지게 된다.

법문이 가벌적 행위를 가능한 한 정확히 기술해야만 어떠한 행위를 해야 하는지를 예측할 수 있게 되고, 행정기관에서도 장래의 행동기준을 제공할 수 있게 된다. 중대재해법안은 명확성의 원칙에 위배되는 내용이 적지 않아 민주주의 · 법치주의 원리를 훼손시킬 뿐만 아니라, 법의 실효성, 즉 산재감소에도 효과를 주기는커녕 큰 혼란을 초래할 우려가 크다.

현재에도 산업안전보건기준에 무엇을, 어떻게, 어디까지 지켜야 할지 불명확하고 비현실적인 규정이 매우 많고, 선진국과 비교하여 산업안전보건기준에 대한 법령에 근거한 해설· 지침도 턱없이 부족한(그 결과 법집행기관의 자의적인 해석이 차고 넘치는) 상태에서, 그리고 산업안전보건문제를 해결하려는 근본적인 노력(예방기준을 정교하고 실효성 있게 만들고 예방인프라를 충실하게 구축하려는 노력)은 보이지 않은 상태에서, 문명국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강한 제재에 의존하는 것은 산재감소의 순기능은 하지 못하고 중소기업 등 사회적으로 취약한 자에게 과잉처벌이 집중되는 등의 역기능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엄벌주의가 안전보건범죄를 낮추는 데 효과적이라는 증거는 없다. 아랍권, 중국, 북한 등의 형벌은 상당히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만약 엄벌주의로 중대재해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 형사정책적으로 입증되었다면 많은 국가에서 엄벌주의 접근을 채택했을 것이다.

엄벌주의를 채택하지 않고도 훌륭한 안전성적을 거두고 있는 국가(독일, 일본, 북유럽 등)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처벌 강화만이 유일한 답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균형 잡히거나 종합적인 접근이라고 할 수 없다. 예방기준은 규범력 관점에서 선진국의 기준을 크게 하회하면서 제재는 영국을 포함한 어느 선진국보다도 제재수준을 강하게 하는 것은 많은 비용과 혼란을 초래하면서 산재예방효과에는 도움이 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손쉬운 엄벌에 의존하면 할수록 정작 위험의 실질적 예방수단을 강구하는 노력을 회피할 우려도 그만큼 커지게 된다. 엄벌입법은 정부가 위험들에 잘 대처하고 있다는 심리적 메시지와 대국민 진정효과를 발휘 할 수는 있겠지만, 그 효과가 오히려 위험의 원인을 규명하고 효과적인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정부의 책임 있는 대응을 회피시키거나 약화 또는 형식화하는 알리바이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위험의 원인이 될 행위들을 강력히 처벌한다는 메시지로 국민을 안심시키는 대신 위험원인을 면밀히 밝히고 그 위험원인을 제거하기 위해서 부담해야 하는 정치적· 사회적 · 경제적 측면의 노력과 수고를 절약할 수 있게 되며, 그만큼 위험의 예방은 더 멀어지게 된다.

독일의 유명한 형법학자인 프란츠 폰 리스트가 주장한 “최선의 형사정책은 사회정책이다.”라는 말을 산업안전보건 영역에 적용해 보면, “산업안전보건에서의 최선의 형사정책은 산재예방정책이다”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산재예방의 인프라를 충실히 구축하는 것에 가장 최우선을 두어야 한다.

한편, 선진국 어느 나라도 산업안전보건범죄에 대해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과 동일한 구성요건으로 되어 있는 형사법으로 규율하고 있는 국가는 없다. 즉, 일반경찰과 특별사법경찰이 동일한 대상에 대해 동일한 내용을 중복적으로 수사하는 예를 발견할 수 없다. 결국 영국을 포함하여 어느 나라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법이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참고로, 영국 법인과실치사법은 영국 산안법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보완하는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다.

공장과 본사가 분리되어 있지 않은 기업, 특히 중소기업의 경우 지금도 대표이사 등 경영진이 산안법으로 처벌되고 있는데, 이 법이 제정되면 보다 강한 처벌에 더 쉽게 노출되게 된다. 그리고 대기업의 경우 공장장 등과 같이 현장에 있는 경영자(사장이 공장과 같은 장소에 있는 경우 포함)는 현재도 처벌되고 있고, 이들의 경우 중대재해법이 제정되면 강한 처벌에 더 쉽게 노출될 것이다.

공장 등 사업장과 분리되어 있는 본사의 경영자가 거의 처벌되지 않고 있는 문제는 중대재해법이 아니라 산안법을 개정하여 의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산안법에서 대기업 경영자에 대한 처벌을 구조적으로 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현행 산안법의 벌칙체계가 엉성하게 규정되어 있어 대기업 경영자에 대한 위하력이 없는 것이지, 산안법이 본래 대기업의 경영진을 처벌할 수 없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를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산안법의 제2장 안전보건관리체제 등 위반에 대해 현재 과태료로 되어 있는 것을 형사처벌로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

요컨대, 발의된 중대재해법안은 전체적으로 안전원리, 법원칙과 부합하지 않고, 재해예방의 실효성, 현장작동성과도 거리가 있으며, 비교법적 관점에서 볼 때에도 보편성과 체계성이 결여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폭적인 정비를 하지 않으면 위헌 지적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