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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포커스 - 특별기고2(중대재해가 다발하는 이유와 중대재해법)

작성자 관리자 | 날짜 2021.06.03

중대재해가 다발하는 이유와

중대재해법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정진우 교수

 

 

전에 관심이 많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산업안전보건담당 근로감독관(특별사법경찰관) 및 산업안전보건공단 직원과 산업재해 예방 예산을 대폭 늘렸는데도, 그리고 산업안전보건법을 전부개정하여 제재(처벌)수준을 대폭 높여 제재 또한 어느 나라보다도 약하지 않은 상태인데도, 중대재해가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것일까? 전부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이 시행된 2020년의 경우 산재사망사고가 오히려 증가한 것으로 잠정 집계되고 있다.

 

재사망사고가 줄어들지 않는 이유에로는 크게 다음 4가지를 지적할 수 있다. ① 산업안전보건법의 구성요건 허술(산업안전보건법 벌칙체계의 엉성함), ② 비현실적 규정의 과다(규범력의 부족), ③ 산재예방행정 전문성의 태부족, ④ 산재예방 인프라의 취약이 그것이다.

 

리나라에서 중대재해 발생이 많은 이유 중의 하나로 낮은 법정형을 지목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고 본다. 중대재해법 제정 이전부터 신체형(징역형)은 이미 선진국 어느 나라보다도 높은 편이고, 벌금형(과태료)의 경우에도 영국, 미국보다는 낮지만, 독일, 일본보다 낮은 것은 아니다. 게다가 선진국에서 찾아볼 수 없는 영업정지(영업허가취소)명령, 전면 작업중지명령 등의 행정제재와 과태료까지를 포함하면 법정 제재가 다른 나라와 비교하여 결코 낮다고 볼 수 없다.

 

벌주의가 안전보건범죄를 낮추는 데 효과적이라는 증거는 없다. 아랍권, 중국, 북한 등의 형벌은 상당히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만약 엄벌주의로 중대재해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 형사정책적으로 입증되었다면 많은 국가에서 엄벌주의 접근을 채택하였을 것이다.

 

라서 우리나라의 중대재해의 다발을 법정제재만으로 설명하는 데는 많은 한계가 있다. 다만, 대기업의 경우 책임 있는 경영자가 거의 처벌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할 수 있다. 즉 제재 자체의 미약이 문제가 아니라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이 책임을 지지 않는 ‘정의롭지 못한’ 처벌이 문제이다.

 

자는 위 4가지 요인이 중대재해가 다발하고 ‘정의로운’ 처벌(‘강한’ 처벌이 아님)이 되고 있지 않은 문제의 원인이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4가지 요인이 개선되지 않고는 처벌수준을 올리더라도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즉, 부작용과 혼란을 많이 초래하면서 효과는 거두지 못하는 법이 될 가능성이 높다.

 

대재해법 제정을 주장하는 많은 사람들은 산업안전보건 문제를 기강의 문제로만 바라보는 편향, 즉 처벌만 강하게 하면 산업안전보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살인, 절도, 폭행과 같이 그 행위의 반도덕성· 반사회성이 당해 행위를 범죄로 규정하는 실정법을 기다릴 것도 없이 일반적으로 인식되고 있는 ‘형사범(자연범)’의 경우에는 이것이 통할 수 있지만, 그 행위의 반도덕성 · 반사회성이 당해 행위를 범죄로 규정하는 법률의 제정 이전에는 당연히 인정되지 않고 당해 행위를 범죄로 규정하는 법률의 제정에 의해 비로소 범죄로 인정되는 ‘행정범(법정범)’의 경우, 특히 산업안전보건과 같은 전문적 · 기술적 성격이 강한 분야의 범죄의 경우에는 기강만으로는 범죄의 발생을 줄이는 데 많은 한계가 있다.

 

라서 준수할 수 있는 법규정과 이에 대한 안내(해설)기준을 충실히 만드는 한편, 이를 잘 준수하도록 다각적으로 충분히 지도 · 홍보를 하는 노력을 한 후, 그럼에도 법규정을 준수하지 않은 자에 대해 확실하게 처벌을 하는 것이 올바른 접근이다. 다시 말해서, 전자(올바른 법규정과 안내기준 및 지도·홍보)가 전제되지 않으면 법정형을 올린다고 하여 범죄가 줄어들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저히 준수할 수 없는 법규정을 만들어 놓고 이를 안 지킨다고 강하게 처벌하는 접근방법으로는 산재예방의 효과를 기대하기도 어렵고 법치주의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즉, 행위의 당벌성을 넘어 서는 ‘위험의 외주화’ 프레임에 입각해서 과도하게 부과된 형벌은 헌법의 원칙에 해당하는 책임주의원칙에 위배될 소지가 크다. 헌법의 원칙은 민주주의 원리이자 법의 실효성을 위해서도 지켜야 할 철칙이다.

 

대재해법안의 가장 큰 특징은 안전보건에 대한 지나치게 ‘포괄적이고 불명확한 의무’를 부과하고 있는 점과 ‘엄벌주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은 헌법의 원칙(명확성의 원칙, 책임주의원칙 등)에 위반되는 문제가 있을 뿐만 아니라, 중대재해 감소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문이 애매모호하고 불명확하게 규정되어 있으면, 수범자가 당해 법률에 정통한 지식을 가진 사람의 의견이나 조언을 구하여도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를 도저히 정확히 예측 할 수 없어, 수범자에게 행동지침으로 작용하지 못하고 법집행자에게도 객관적 판단지침을 주지 못하여 자의적이고 차별적인 법해석이 이루어지게 된다. 법문이 가벌적 행위를 가능한 한 정확히 기술해야만 어떠한 행위를 해야 하는지를 예측할 수 있게 되고, 행정기관에서도 장래의 행동기준을 제공할 수 있게 된다.

 

대재해법안은 이러한 명확성의 원칙에 위배되는 내용이 적지 않아 법치주의 원리를 훼손시킬 뿐만 아니라 중대재해 감소에도 별다른 효과를 주지 못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중대재해법으로 경영책임자라는 개인을 처벌하려고 하다 보면, 산업안전보건법과 내용 및 집행 면에서 중복될 뿐만 아니라, 법리적으로 적지 않은 문제가 초래될 것이다. 문제가 있다면 시행 전에라도 실효성 있게 개정을 하는 것이 중대재해법의 규범력을 진정으로 높이는 길임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