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Notice

이달의 포커스 - 최신판례해설

작성자 관리자 | 날짜 2021.06.03

업무에 기인한 ‘태아의 건강손상’이

‘업무상 재해’에 포함되는지 여부

- 대법원 2020. 4. 29 선고 2016두41071 판결

조성혜 (동국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I. 사실관계

1) 사건개요

원고들(4명)은 제주특별자치도 ○○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들로서 2009년에 임신하여 2010년에 선천성 심장질환아를 출산하였다. 2009년에 임신한 간호사 15명 중 6명만이 건강한 아이를 출산하였고, 원고들 외 다른 5명은 유산을 하였다.

원고들은 해당 병원 간호사의 근로여건 및 작업환경과 관련한 서울대학교 산학협력단의 2012. 2. 29. 역학조사 보고서를 토대로 원고들이 임신 초기에 임신 여성과 태아의 건강에 유해한 요소들에 노출되어 태아의 심장 형성에 장애가 발생하였으므로 선천성 심장질환아 출산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며, 2012. 12. 11. 피고(근로복지공단 제주지사)에게 요양급여를 청구하였다. 이에 대하여 피고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하 ‘산재보험법’이라 한다)에서 업무상 재해란 ‘근로자 본인’의 부상 · 질병· 장해 · 사망만을 의미하며 원고들의 자녀는 산재보험법의 적용을 받는 근로자로 볼 수 없다는 이유로, 2012. 12. 27. 요양급여 부지급 처분을 하였다(이하 ‘1차 거부처분’이라 한다). 이에 원고들이 2013. 3. 27. 피고에게 1차 거부처분에 대한 심사를 청구하였으나, 2013. 5. 27. 기각결정을 받았다.

원고들은 변호사에게 법률자문을 구하여 ‘태아의 심장 형성에 장애가 발생하였을 당시에 태아는 모체의 일부였으므로, 발병 당시 태아의 질병은 모체의 질병으로 보아야 하고, 산재보험법의 적용 여부는 근로자에게 질병이 발병할 당시를 기준으로 하며, 발병 이후 근로자 지위를 상실하였다고 하여도 계속 산재보험이 적용되므로, 출산아의 선천성 심장질환을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2013. 9. 12. 다시 피고에게 요양급여를 청구하였다.

피고는 2013. 9. 26. 원고들에게 “재해 발생일시를 특정하고, 산재보험 초진소견서, 신청 상병을 확인할 수 있는 각종 검사자료 및 결과지를 제출하라”고 자료보완을 요구하였다. 원고들은 2013. 10.경 피고에게 재해 발생 시점을 출산일이 아니라 ‘임신 중’이라고 특정하면서 ‘임신 중의 의무기록’과 ‘선천성 심장질환에 관한 의학자료’를 추가로 제출하였다. 피고는 2013. 11. 6. 원고들에 대하여 “자료보완을 요청하였으나 산재보험 초진소견서가 제출되지 않아 상병명 및 요양기간 등 확인이 불가하다”라는 이유로 ‘민원서류 반려처분’을 하였다(이하 ‘2차 거부처분’이라 한다).

 

2. 초심 및 원심의 판단

1) 초심의 판단(서울행법 2014. 12. 19. 선고 2014구단50654 판결)

원고들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요양급여 신청반려처분취소 소송에서 초심인 서울행정법원은 원고 자녀들의 선천성 심장질환은 임신 초기 태아의 건강손상에 기인한 것이고, 그러한 태아의 건강손상과 업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임신 중 모체와 태아는 단일체라는 점에서 임신 중 업무에 기인하여 태아에게 발생한 건강손상은 산재보험법상 임신한 근로자에게 발생한 업무상 재해로 보아야하므로 요양급여의 지급을 거부한 2차 거부처분은 위법하다고 판단하였다.

 

2) 원심의 판단(서울고법 2016. 5. 11. 선고 2015누31307 판결)

이에 반해 원심인 서울고등법원은 ① 산재보험급여의 수급권자는 근로자가 업무상의 사유로 부상을 당하거나 질병에 걸린 경우 근로자 본인에 한정된다는 점, ② 여성근로자가 유해요소에 노출되어 출산한 질환아의 선천성 질병은 출산아의 질병일 뿐 모(근로자)의 질병은 아니어서 원고들의 업무상 재해로 포섭할 수 없다는 점, ③ 출산아의 질병은 모의 질병은 아니므로 모에게는 수급권이 없다는 점, ④ 원고들에게 자녀의 선천성 질병에 대한 산재보험급여의 수급권이 없는 이상 그 청구권도 없다는 점 등에 비추어 볼 때 이 사건 거부처분은 적법하다고 판단하였다.

 

II. 판결요지

반면 이 사건 판결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원심법원에 환송하였다.

산재보험법에는 태아의 권리능력을 인정하는 별도의 규정이 없으므로 산재보험법의 해석상 모체와 태아는 ‘한 몸’ 즉 ‘본성상 단일체’로 취급된다. 따라서 임신한 여성 근로자에게 그 업무에 기인하여 발생한 태아의 건강손상은 여성 근로자의 노동능력에 미치는 영향이나 그 정도와 관계없이 여성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한다.

피고는, 임신한 여성 근로자가 업무에 기인하여 ‘유산’할 경우에 한하여 이를 여성 근로자 본인 신체의 완전성 손상으로 보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할 수 있다는 관점에 서 있는데, 모체의 일부인 태아 건강손상의 정도에 따라 업무상 재해의 인정 여부를 달리하는 것은 부당하다. 모성과 태아의 생명 보호라는 측면에서는 유산과 태아의 건강손상을 구별할 합리적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임신한 여성 근로자에게 그 업무에 기인하여 모체의 일부인 태아의 건강이 손상되는 업무상 재해가 발생하여 산재보험법에 따른 요양급여 수급관계가 성립하게 되었다면, 이후 출산으로 모체와 단일체를 이루던 태아가 분리되었다 하더라도 이미 성립한 요양급여 수급관계가 소멸된다고 볼 것은 아니다. 따라서 여성 근로자는 출산 이후에도 모체에서 분리되어 태어난 출산아의 선천성 질병 등에 관하여 요양급여를 수급할 수 있는 권리를 상실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

산재보험법상 업무상 재해의 개념을 해석 · 적용함에 있어서, 여성 근로자의 임신 중에는 태아가 모체와 일체를 이루고 있다고 보아 태아의 건강손상에 관하여 여성 근로자에게 요양급여 수급권을 인정하다가 여성 근로자의 출산 이후에는 모체와 분리되었다는 이유로 갑자기 그 출산아의 선천성 건강손상에 관하여 수급권을 부정하는 것은,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를 신속하고 공정하게 보상하여 근로자 보호에 이바지’한다는 산재보험법의 입법 목적에도 위배될 뿐만 아니라 헌법 제34조 제2항, 제6항에 의한 생존권적 기본권을 제대로 보장하지 못하고 헌법 제32조 제4항에 의한 여자의 근로에 대한 특별한 보호와 차별금지, 헌법 제36조 제2항에 의한 모성 보호의무를 제대로 구현하지 못하는 해석이다.

 

III. 검토의견

1. 이 사건의 쟁점

이 사건의 쟁점은 임신한 여성 근로자가 태아의 건강에 유해한 요소들에 노출되어 선천성 심장질환아를 출산한 경우 이를 산재보험법상 업무상 재해로 간주할 수 있느냐 여부이다.

현행 산재보험법은 근로자의 업무상 부상, 질병 장해에 대하여는 업무상 재해를 인정하나, 태아 또는 출산아의 업무상 재해에 대하여는 별도의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다만 태아와 모체는 단일체라는 점에서 태아의 건강손상은 모체의 건강손상과 동일시되어 업무상 사유에 의한 유산 또는 사산은 업무상 재해로 인정될 개연성이 높다.

문제는 이 사건 원고들의 경우처럼 임신한 여성 근로자가 태아의 건강에 유해한 요소에 노출되어 태아의 심장 형성에 장애가 생기고, 이로 인해 선천성 심장질환을 갖는 자녀를 출산한 경우에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할 수 있느냐 여부이다.

원심은, 현행 산재보험법은 근로자가 업무상 재해를 입은 경우를 전제로 수급권을 인정하므로 출산아가 선천성 질병에 걸린 경우는 피해자가 근로자에 해당하지 않아 업무상 재해를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고, 이 사건 판결은 태아와 출산아의 일체성을 전제로 하여 선천성 질환아의 출산 역시 업무상 재해로 인정해야 한다는 견해이다.

 

2. 태아 · 출산아 구분의 타당성

임신한 여성 근로자가 유해한 요소에 노출되어 태아의 건강에 손상이 생긴 경우 대개는 근로자가 유산 또는 사산을 하거나 선천성 질환아를 출산한 이후에야 그 확인이 가능하다.

태아는 모와 단일체 관계에 있으므로 태아의 건강손상은 근로자의 건강손상과 동일시될 수 있으므로 유산 또는 사산의 경우는 모의 건강손상으로 간주되어 업무상 재해로 인정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태아가 출생하면 모체와 분리됨과 동시에 모와는 독립된 새로운 인격체가 된다. 따라서 태아일 때 건강손상을 입어 선천적 질병을 갖고 태어난 아이는 현행 산재보험법에서 보호받는 근로자가 아니라는 점에서 산재보험 수급권의 인정 여부가 문제된다.

이 사건에서 원심은 산재보험법의 문리해석에 근거하여 태아가 출생과 동시에 모체와 분리되면 더 이상 모와 일체가 아니므로 출산아의 질환이 산재보험에서 인정하는 근로자의 업무상 질병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출산아의 선천적 심장질환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지 않았다.

원심의 논리에 의하자면 여성 근로자가 업무 수행 중 유해 요인에 노출되어 유산 또는 사산한 경우는 업무상 재해로 인정될 수 있지만, 건강손상을 입은 태아가 선천성 질환을 갖고 태어난 경우는 모체와 분리된 독립된 인격체로 되어 더 이상 모(근로자)가 아니므로 업무상 재해로 인정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원심의 견해는 지나치게 형식적인 법해석에 근거한 것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결론에 이르게 한다. 이 사건 판결이 설시하고 있듯이 태아와 출산아가 같은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모태 내에 있느냐 모태와 분리되어 출생하였느냐에 따라 달리 대우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 특히 유산이나 사산의 경우보다 선천성 질환아의 출산이 더 장기간 당사자인 아이와 부모에게 감내하기 어려운 고통을 준다는 점에서 출산아의 선천성 질환에 대해 업무상 재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심히 부당한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이와 같은 점에서 볼 때 선천성 질환을 갖고 태어난 출산아에 대하여도 업무상 재해를 인정해 주어야 한다는 이 사건 판결의 견해가 타당하다고 본다.

 

3. 법개정안 및 사견

이 사건은 현행 산재보험법이 태아 또는 출산아의 건강손상에 관한 업무상 재해에 관한 규정을 두고 있지 않기 때문에 발생한 다툼이다.

이에 2020. 7. 3. 박주민 의원 등 21명이 산재보상보험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마련하여 국회에 제출한 바 있다. 이 개정안은 여성 근로자가 임신 중 업무상 유해요소에 노출되어 태아의 건강이 손상되었을 경우 이를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도록 하는 것을 주요 골자로하고 있다.

이 개정안은 산재보험법 제5조 제1호의 “업무상 재해”의 정의인 “업무상 사유에 따른 근로자의 부상 · 질병 · 장해 또는 사망을 말한다”를 “...근로자 또는 근로자가 출산한 친생자의 부상 · 질병 · 장해 또는 사망을 말한다. 다만, 태아의 부상이나 사망은 제외한다"로 개정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제36조 5항의 보험급여 산정에서도 근로자 뿐 아니라 “친생자의 업무상의 재해”도 포함시키고, 제37조 제1항 제2호의 업무상 질병 규정에도 라목을 신설하여 “근로자의 업무 환경이나 업무상 질병으로 인하여 친생자에게 발생한 질병”을 추가하였다. 이에 상응하여 제40조의 요양급여(“근로자와 그가 출생한 친생자가 질병에 걸린 경우”) 및 제57조의 장해급여(“근로자나 그가 출생한 친생자가 질병에 걸려 치유된 후 신체 등에 장해가 있는 경우”)에도 친생자의 질병 및 장해에 대한 신설 규정을 두었다.

위 개정안은 태아 및 친생자의 건강손상을 산재보험의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으나, 다소 논란의 소지가 있다. 예컨대 법안 제5조 제1호에서 “근로자 또는 근로자가 출산한 친생자…다만, 태아의 부상이나 사망은 제외한다”는 규정은 자칫 태아의 부상이나 사망은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오인될 여지가 있다. 물론 개정안의 취지에 비추어 볼 때 “태아의 부상이나 사망은 제외한다”는 규정이 이를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즉 개정안이 업무상 재해를 “근로자나 친생자의 업무상 사유에 따른 근로자의 부상 · 질병 장해 또는 사망을 말한다”로 하였기에, 태아의 부상이나 사망은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로 간주한다는 뜻으로 새길 수 있다. 그러나 태아의 부상이나 사망이 임신한 근로자의 부상이나 사망이라는 명시적인 규정이 없는 이상 “태아의 부상이나 사망은 제외한다”는 규정은 또다른 분쟁을 초래할 가능성이 다분하다.

따라서 사견으로는 업무상 재해를 “근로자 및 태아(출산아를 포함한다)의 업무상 사유에 따른 부상 · 질병 · 장해 또는 사망을 말한다”로 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그렇게 되면 임신한 여성 근로자가 유해 요인에 노출되어 당사자 또는 태아 및 출산아가 질병 · 부상 · 장해 또는 사망에 이르게 된 경우 모두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된다. 더불어 출산아에게 업무상 재해가 발생한 경우 당사자가 미성년인 기간 동안은 그의 부모에게 수급권을 인정하는 규정을 둘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