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Notice

이달의 포커스 - 특별기고1(근로자대표제 개선, 사회적 대화와 민주주의의 진전이다.)

작성자 관리자 | 날짜 2022.02.24

근로자대표제 개선, 사회적 대화와 민주주의의 진전이다.

이정식 (전 한국노총 사무처장)

 

 

우리나라는 갈등공화국으로 불린다. 압축· 복합·복잡갈등으로 해결도 쉽지 않다. 이념· 지역· 세대 . 계급· 계층갈등이 난마처럼 얽혀 있기 때문이다. 제도적 미비와 갈등관리 역량의 부족탓도 크다. 우리 사회의 갈등수준은 OECD국가 중 터키에 이어 두 번째다. 한국의 사회갈등지수가 OECD 평균수준으로만 개선되더라도 7~21% 증가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노사갈등은 대표적 갈등의 하나다. 정부통계에 따르면, 부당해고 등 구제신청건수가 2010년 11,278건에서,2014년 12,662건으로 최고를 기록한 후 점점 감소하다가 2019년 14,323건, 2020년 10월 현재 15200건에 이른다. 중노위 판정에 불복한 행정소송 제기건수도 2010년 321건에서 2019년 639건으로 대폭 늘었다. 조정신청건수도 2010년 708건에서 2019년 1,291건으로 대폭 늘었고, 조정성립률도 2010년 64.5%, 2011년 70.2%에서 2019년 47.6%로 계속 하락하고 있다. 갈등과 분쟁이 점점 많아 지고, 그 만큼 해결도 어려워진다는 이야기다. 대부분의 갈등과 분쟁은 임금과 노동조건, 인사· 징계와 관련된 규칙의 설정 및 적용과 관련된 것이고, 갈등의 근저에는 근로계약과 취업규칙 등 자치규범이 노사대등하게 민주적으로 정당성있게 결정되고 집행되어 수용성 문제가 있다. 우리 현실은 극단적으로 표현하여, 노동자의 자주적 단결체인 노동조합이 조직된 10% 남짓의 노동자를 제외하고는, 사용자가 거의 일방적으로 또는 주도적으로 결정하고, 노동자가 이것을 수동적으로 수용 또는 순응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할 수 있다. 대표성과 책임성으로 연결되는 직장민주주의는 실종된 상태다. 이런 가운데, 노동조합이 없는 사업장에서도 '근로자대표'를 노동자들이 직접·비밀·무기명 투표로 뽑아, 노동자의 권익 보호 활동을 하도록 하는 사회적 합의가 나왔다. 경영상 해고 협의, 근로시간제 서면합의 등 노동조건과 관련된 30여개 법조항에서, '근로자를 대표하여' 회사와 협의 또는 합의하는 주체지만, 그동안 그 지위나 선출방법의 법적 근거가 없어서 '근로기준법 적용배제의 출구 역할'을 한다는 비판이 제기돼 왔었는데,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가 지난해 10월 16일 '근로자대표 제도 개선에 관한 노사정 합의문'을 노· 사 · 공익위원 만장일치로 의결한 것이다. 합의의 의의와 시사점은 무엇일까. 먼저, 경사노위에서 노사공익이 한발씩 양보하여 만장일치로 합의했다는 형식적, 절차적 의미에 있어서 평가할 만하다. 오래된 무거운 숙제를 제도개선의 원칙과 방향에 있어서 구체적으로 합의한 것은 오랜만에 이루어진 사회적 대화의 결실이라고 할 수 있겠다. 둘째로, 내용에 있어서 상대적 약자보호 및 직장내 민주주의 실현에 한발짝 다가서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점이다. 이로써, 그동안 법적 흠결을 통한 근로기준법의 개방 또는 적용면제의 창구로 비판받아 왔고, 노동시장 유연화의 촉진제 역할 또는 근로기준법의 형해화 역할을 해왔다는 지적을 받았던 유명무실의 근로자대표제를 개선함으로써, 탄력근로제 등 유연근무제에 대한 정당성을 높였다. 셋째로, 대표체계의 전면적 경쟁시대의 도래이다. 이미 기업 단위 복수노조 체제가 들어선지 10년이 된다. 노조간 경쟁체제가 된 것이다. 여기에 더해 근로자대표를 직접· 비밀· 무기명 투표로 선출하여 민주성과 대표성을 강화하게 됨과 동시에 임기를 보장하고 권한을 확대한다면 기왕의 조직된 노동조합과의 대표성 및 효과성 등에 있어서 경쟁효과가 나타나지 않을까 예상된다. 이것은 그간 노동조합이 기업별 체제에 있어서 노사협의제 등 근로자대표제가 노동조합과 대체관계에 있지 않을까 우려하여 노사협의제에 대한 우려 또는 미온적 입장을 제시하는 근거가 되어 왔었는데,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진전과 노동자 권리의식의 변화 등을 감안하면 새로운 근로자대표제는 노동조합과의 보완관계 또는 노조로 전환하는 계기로 작용할 수도 있어 보인다. 넷째로, 근기법의 '개방화 및 유연화'의 가능성이다. 글로벌 경쟁의 심화, 4차산업 혁명과 경제의 디지털화 및 서비스화의 진전과 다양한 고용 및 근무 형태의 출현 등으로 향후 근로기준법 개정논의 때마다 노동시장 유연화 내용과 이에 부응하는 근로자대표 협의 및 동의와 합의를 전제로 한, 근기법의 '개방조항'이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이것은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통상임금 관련 노사정위윈회 논의 및 탄력근무제의 확대 등과 관련하여 역사적으로 경험한 바 있는 내용이다. 다섯째, 궁극적으로는 이번 근로자대표제 개선 합의는 우리나라 노사관계가 '계기적 발전'을 이루는 것으로 귀결되어야 한다. 산별노동조합과 산별 교섭, 노사공동결정 및 사회적 대화 활성화 등은 상호맞물려 있는 시스템이다. 보호(규제)와 유연성의 조화 즉, 유연안정성은 노사상생의 현실적합성과 제도정합성을 이루는 기초인 바, 이번 합의를 계기로 이러한 시스템이 마련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근로기준법의 '개방조항' 또는 노동시장 유연화와 관련된 것으로서 제대로 된 보완관계 또는 시너지 효과를 거두기 위한 궁극적 해결책은 이익대변체계가 이해대립 내용의 산별교섭과 이를 보완 및 이해공통과 협동·협력사항의 근로자 대표(노동평의회, 종업원평의회, 근로자대표 등) 협의· 합의로 나아가야 한다. 이번 합의와 법제화를 계기로 조직적 노력과 제도 개선의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현행 노동관계법상 근로자대표제도가 그야말로 기능부전의 상태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향후 근로자대표의 중요성과 그 역할은 보다 증대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노동조합 조직률의 지속적인 저하, 고용형태의 다양화 등으로 인해 전통적인 근로조건결정시스템에 한계가 부각되고 있고, 경제의 글로벌화, 기업간 경쟁의 격화, 서비스경제의 확산, 다양한 고용형태와 이에 따른 작업방식의 다양화, 일과 가정의 양립 등 근로자의 요구수준의 개별화 등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이러한 점에서 향후 기업 내 근로자대표제도의 필요성은 보다 확대될 것이 기대된다. 이에 따라 현행 취업규칙 변경에 있어 근로자참여제도, 노사협의회,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대표 등 현행 노동관계법에 산재해 있는 근로자대표시스템을 통합하여 명실상부한 기업내 집단적 근로조건 결정의 주체로서 근로자대표시스템을 개편 내지 재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할 것이다. 노사대등의 관점에서 근로조건에 대한 집단적 협의 및 합의를 가능케 하는 근로자대표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 우리가 앞으로 시급히 풀어야 할 숙제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