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Notice

이달의 포커스 - 특별기고1(최저임금제도 개선을 위한 제언) (2021년 9월 호)

작성자 관리자 | 날짜 2022.04.28

최저임금제도

개선을 위한 제언

이정 (한국외국어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의 실현'을 추구하는 최저임금제는 꽤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 제도는 1894년 뉴질랜드가'산업조정법'을 시작으로 많은 국가들이 최저임금제를 도입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1953년 근로기준법 제정 시에 근거규정을 두었지만 당시의 경제상황을 고려해 유예해오다가 1988년에 처음 시행하게 되었다. 최저임금제는 이처럼 오랜 역사에도 불구하고 늘 논쟁의 대상이 되어 왔다. 노동이 유일한 소득의 원천인 임금 근로자들의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것은 당연히 국가의 책무이다. 그런 점에서 최저임금제는 공동체를 통합하고 구성원들의 자존감과 정체성을 지켜주는 기능을 한다. 한편 이 제도는 사적 자치 및 시장경제에 대한 개입이므로 제도설계 및 운영에 매우 신중할 필요가 있다.

 

2021년 7월 12일. 제9차 마지막 최저임금위원회가 열리는 회의장 분위기는 회의 시작부터 노사 간의 기싸움으로 긴장감이 흘렀다. 노사 양측은 두세 번에 걸쳐 수정안을 제시하면서 접점을 찾으려 노력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그러자 공익위원들은 심의촉진구간으로 9,000원에서 9,300원을 제시했다. 그러자 이에 불만을 품은 민주노총 근로자위원들은 전원이 퇴장했고, 연이어 사용자위원들도 공익위원이 제시한 안을 수용할 수 없다고 하면서 회의장을 빠져나갔다. 이렇게 회의장이 어수선한 가운데 공익위원의 단일안이 최종적으로 채택되어 내년도 최저임금은 올해보다 약 5.1% 오른 9,160원으로 정해졌다. 최저임금제도가 시행된 이래 올해로 꼭 34년째. 매년 똑같은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최저임금은 근로자의 입장에서 보면 생계보장을 위한 최소한의 기준임금의 역할을 하지만, 기업입장에서 보면 회사의 존폐여부가 걸린 최대한의 지불능력의 의미를 가진다. 이처럼 최저임금의 기준설정을 둘러싸고 노사양측의 이해관계가 서로 상반되기 때문에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매년 똑같은 노사갈등을 되풀이 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지금으로부터 3년 전인 2017년에 최저임금위원회는 경영계와 노동계가 제시한 6가지 제도 개선 과제를 개선한다는 목표하에 전문가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한 적이 있다. 당시에 TF가 논의할 세부과제로는 경영계가 제시한 최저임금 산입법위 개선, 업종·지역별 차등 적용, 최저임금 결정구조 개편과 노동계가 제시한 가구생계비 계측·반영 방법, 최저임금 인상이 소득분배 개선과 저임금 해소에 미치는 영향, 최저임금 준수율 제고 등을 포함하여 최저임금제도 전반에 걸쳐 손을 본다는 목표를 제시한바 있다. 그러나 이러한 야심찬 계획은 2004년, 2015년 때와 마찬가지로 노사양측의 의견대립으로 결론을 도출하지 못하고 혼란만 초래했다.

 

최저임금은 전체 근로자를 대상으로 하는 만큼 파급효과가 지대하고 국가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 그런 만큼 최저임금제도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최저임금이 근로자들의 생활안정과 기업들의 경제상황 등을 충분히 배려하면서 보다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제도를 설계할 필요가 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종전의 최저임금정책에 대한 철저한 검토와 성찰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몇 가지만 제언하고자 한다.

 

첫째, 그간 정부가 최저임금의 제도 개편에 착수하게 된 배경을 살펴보면,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이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를 국정과제로 삼은 문재인 정부는 소득양극화로 인한 격차문제 해소에 많은 공을 들여왔다. 그 첫 단계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더불어 대선공약 중의 하나인 최저임금을 2020년까지 1만 원대로 인상하겠다는 약속을 이행하고자 2018년도 최저임금을 사상유래 없는 16.4% 인상했다. 그 배경에는 저임금 근로자들의 소득을 끌어올려 격차를 줄이고 근로자들의 가처분소득을 높여 내수를 진작한다는 소위 '소득 주도 성장론'의 핵심가치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하지만 최저임금의 급격한 광폭 인상은 경제의 선순환 구조로 이어지지 못하고 중소 · 영세기업의 인건비 부담을 가중시켜 오히려 경기가 위축되고 일자리가 감소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둘째, 정부는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으로 인하여 심각한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영세 중소상공인 등을 지원하기 위해 과거 5년간의 평균 인상률을 상회하는 비율에 상응하는 금액을 보조금으로 지급하기로 했는데, 그 금액이 자그마치 3조원으로 추정된다. 최저임금을 지역 · 업종 등의 특수성을 고려하지않고 일률적으로 인상하다보니 이로부터 생긴 부작용을 혈세로 메운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영세 자영업자의 인건비 손실을 정부보조금으로 지원하는 것은 시장경제주의에 맞지 않으며 그 유래를 찾기 힘들다. 또한 이러한 재정적 지원이 언제까지 계속될지도 의문이다. 그러다보니 결과적으로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으로 득을 보는 자는 납세의무를 지지 않는 외국인근로자들뿐이라는 농담 아닌 농담 같은 얘기도 들린다.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은 그렇다 치고라도 앞으로 납세자의 부담 증가 및 시장경제의 개입에 따른 부작용 등을 고려하여 속도조절을 할 필요가 있다. 최저임금제를 신속하게 정비해야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셋째, 최저임금제를 보다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체계적 법제도 개선도 병행해야 한다. 여기서 최대 쟁점은 역시 경영계가 요구한 최저임금의 산입범위의 문제와 업종별 · 지역별 차등 적용 여부가 될 것이다. 현행 최저임금법령에 의하면 기본급과 월고정수당만 최저임금 계산을 위한 산입대상에 포함되고, 1개월을 초과해 지급하는 정기상여금이나 복리후생 성격의 수당, 시혜적 성격의 현물급여 등은 제외되는 구조다. 그러다보니 실제로 연봉 4~5천만 원을 받고 있는 근로자들도 최저임금에 미달하는 기이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통상임금 산정 시에는 정기상여금 등을 포함하는 등 산입범위를 점점 넓혀가는 판례의 추세와는 매우 대조적이다. 이에 대해서는 정치권과 정부도 최저임금 산입범위 조정이 필요하다는 데에는 공감하는 분위기다.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의 실현이라는 최저임금법의 입법취지에 비추어 산정범위를 무작정 시혜적인 것까지 확대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통상임금과의 산입범위를 어느 정도 맞출 필요가 있다.

 

넷째, 현행 최저임금법은 1959년에 제정된 일본의 최저임금법을 모델로 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그래서 적어도 형식적으로는 일본의 최저임금법제와 비슷한 구조로 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 그 운용실태를 보면 매우 상이함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일본도 우리와 같이 '1개월을 초과하는 임금(상여금 등)'을 최저임금 산정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왜냐하면 일본에서는 대략 년 2회(하계 및 동계) 상여금을 지급하고 있기 때문에 제외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일본의 상여금은 우리나라의 정기상여금적 성격과는 달리 오히려 미국과 같이 인센티브적인 성격이 강하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나라에서도 수년 전 통상임금을 둘러싼 분쟁이 일어난 적이 있다. 당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정기성· 일률성· 고정성을 이유로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킨 바 있는데, 그렇다면 같은 연장선상에서 이를 최저임금 산입대상에 포함시키는 것이 논리에 맞다. 또 하나 우리나라에서는 최저임금 산정시에 주휴수당의 포함 여부도 문제가 되고 있는데, 일본에서는 유급주휴(有給週休) 인정하고 있기 않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는 발생할 여기가 없다.

 

다섯째, 일본에서는 우리와는 달리 최저임금을 보다 합리적으로 산정하기 위해 업종별 . 지역별 차등제도를 두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일본이 이처럼 최저임금을 2트랙으로 운영하는 이유는 지역별 물가수준과 경제사정, 업종별 고용환경과 노동의 강도등 특수성을 임금에 반영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경영계를 중심으로 지역별 · 업종별 최저임금제를 도입하지는 의견이 있는 반면, 이에 대해서는 광역철도망이 잘 정비되어 있어 지역 간 이동이 빈번할 뿐만 아니라 업종 간 이해 조정을 위한 업종분류가 난해하다는 점 등을 들어 이에 반대하는 의견도 만만찮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현행처럼 지역별· 업종별 특성을 사장한 채 최저임금을 천편일률적으로 정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마지막으로, 최저임금의 준수율 제고, 적용제외 및 형사처벌의 완화 여부에 대해서도 검토의 여지가 있다. 우리의 경우 최저임금의 적용을 받지 못하는 미준수율이 약 14%에 이를 정도로 높은 편이다. 이중에는 고의적으로 준수하지 않는 경우도 있겠지만 대다수는 재정능력의 부족이 원인일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영세한 소상공인과 자영업이 많고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는 근로자들이 여기에 집중되어 있는 만큼, 최저임금 결정에서 사업주의 임금 지불 능력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최저임금 미준수자에 대해서는 형사처벌을 통한 시정보다 홍보와 교육을 강화하고, 최저임금의 적용제외 대상을 감액대상으로 하는 등 완화의 여지가 없는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 특히 최근에는 코로나사태가 장기화되면서 그 직격탄을 맞은 중소영세기업 중에서는 폐업을 하는 기업이 속출하는 등 지불능력이 현저히 떨어진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아무쪼록 최저임금제를 시행한 지 30년이상이 경과한 만큼, 이제는 노사 모두가 납득하는 균형 잡힌 제도로 정착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