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Notice

이달의 포커스 - 특별기고1(대기시간의 입법적 규율과 과제) (2021년 11월 호)

작성자 관리자 | 날짜 2022.08.26

대기시간의 입법적 규율과 과제

최홍기 교수 (한국고용노동교육원)

 

I. 들어가며

최근 근로시간의 단축으로 인하여 근로시간 및 휴게시간, 대기시간의 개념을 보다 명확히 규율할 필요가 있다는 논의들이 적지 않다. 현행법제에서는 근로시간, 휴게시간, 대기시간의 개념을 분명하게 정의하고 있지 않아, 노사 간의 분쟁요인이 되고 있다.

특히, 현행 근로기준법상 대기시간 관련 규정은 과거 판례를 통해 인정되어 오던 대기시간을 명문화하여 근로시간으로 간주 · 인정하였으나, 현행 근로기준법 제50조 제3항에서는 대기시간에 관해 구체적이고 명확한 개념을 제시하지 않은 채, 단지 "근로자가 사용자의 지휘 · 감독 아래에 있는 대기시간 등은 근로시간으로 본다"라고만 규정하고 있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물론 판례를 통해 대기시간의 판단을 위한 법리를 형성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명확한 대기시간의 개념은 산업현장의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

대기시간이 근로시간 또는 휴게시간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근로기준법이 정하고 있는 법정근로시간 상한의 위반에 따른 형사책임 문제와 가산임금의 지급문제는 물론 최저임금법상 최저임금 계산을 위한 근로시간의 산정, 산재보험법상 업무상 재해의 여부, 노조법상 조합활동의 정당성 판단 등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논의의 실익이 적지 않다. 나아가, 최근 급속하게 변화하고 있는 노동환경의 상황을 고려해본다면, 주요 외국과 같이 대기시간의 개념을 보다 명확하게 규율하는 방향을 구체적으로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이하에서는 독일의 대기시간과 관련한 규율을 간단히 살펴본 후 입법정책적 개선과제를 모색해보도록 한다.

 

II. 독일의 대기시간 규율

1. 통상근로(Vollarbeit)

독일의 근로시간법(ArbZG)상 근로시간의 개념은 우리와 동일하며, 휴게시간을 제외한 근로가 시작되는 시점에서부터 끝나는 시점까지의 시간을 근로시간으로 보고 있다(§ 2 Abs. 1 ArbZG). 이때 근로라 함은, 사용자의 이익을 위하여 노동력의 제공 또는 제공할 태세에 놓아둠으로써 사용자의 이익에 기여하는 일련의 활동을 말하며, 근로자가 실제로 근로를 제공하거나, 사업장 혹은 사용자가 지정한 장소에 머물러 있는 시간이라면 근로시간에 해당한다.

참고로 연방노동법원의 판례에 따르면 근로는 사용자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데 기여하는 업무라고 정의되고 있으며, 근로시간은 근로자가 실제로 일한 시간 또는 근로계약상의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사용자에 의해 정해진 장소에 대기를 하고 그곳에서 근로계약상의 근로를 제공하는 시간이라고 의미하고 있다. 이러한 정의에 따르면, 근로를 위하여 대기하고 있는 시간은 근로시간으로 충분히 인정될 수 있다.

 

2. 근로대기 또는 업무대기 (Arbeitsbereitschaft)

독일의 근로시간법(ArbZG)상 근로대기는 온전한 근로의 시간과 동일하게 평가되고 있다.

즉, 근로대기는 비록 현재 구체적인 근로를 제공하지 않더라도, 언제든 노무제공의 상황이 발생하면 사용자의 지시가 없더라도 즉시 근로에 투입되는 상태를 의미한다. 예컨대, 근로자가 가게나 사무실에서 고객을 기다리는 상태 또는 고객이 없는 상황에서도 언제라도 고객을 맞을 준비를 하고있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러한 근로대기시간은 근로시간으로 간주되며, 유급으로 처리된다.

다만, 근로대기는 기본적으로 근로시간에 포함되지만, 통상근로에 비해 노동강도가 약한 시간으로 인식되는 되므로, 근로시간법에서는 근로대기와 관련해서 예외규정도 두고 있다. 만약, 근로시간의 상당부분이 근로대기 등에 해당되는 경우에는 단체협약내지 사업장 협정을 통해 10시간을 초과하는 1일 근로시간의 연장이 가능하도록 규정(독일 근로시간법제7조 제1항 제1호의a 및 제4호의a)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참고로 근로시간법은 근로대기에 대하여 어떻게 임금을 지급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지 않으며, 일반적으로는 개별 근로계약이나 단체협약 등을 통해 결정되고 있다.

 

3. 대기근로 또는 준비대기 (Bereitschaftsdienst)

대기근로란 근로자가 사업장 내부 또는 사업장 외부에 대기하면서 사업목적을 위하여 필요할 경우 사용자의 지시에 따라 즉시 또는 지체없이 자신의 노동력을 투입할 태세를 갖추어 둔 상태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 직장 내 대기 또는 자택대기의 형식을 취하면서 사용자의 요구(지시)가 있으면 즉각 업무에 투입될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주로 보건 · 의료업에 종사하는 자나 소방이나 요양 등 공공부문에 종사하는 자의 근로형태에서 자주 발견된다.

원칙적으로 대기근로는 근로시간에 산입되어야 할 근로의 한 형태로 보아야 하므로, 사용자는 업무계획에서 휴식시간 및 허용되는 최장근로시간 등을 준수해야 한다.

이처럼 대기근로는 근로시간에 산입되어야 할 근로의 한 형태이지만, 그 대가 산정에 있어서는 통상근로(Vollarbeit) 또는 근로대기(Arbeitsbereitschaft)와는 다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 이유는 업무의 부담과 강도가 상대적으로 낮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임금을 산정함에 있어 사용자는 노사 간 합의를 통해 대기근로시간에 대해서는 통상근로시간에 비해 임금을 낮게 책정할 수 있다. 실제로 통상 근로시간을 기준으로 할 때 약 70% 정도로 책정하여 대기근로수당을 산정한 사례도 있다.

 

4. 호출대기(Rufbereitschaft)

그밖에 독일 근로시간법(ArbZG)에서는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지 않으나, 실무상 구별되는 개념으로서 호출대기가 있다. 이는 근로에 투입될 수도 있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대기근로와 유사하나, 별도의 호출이 이루어지기 이전까지는 근로자의 자유로운 시간활용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개념상 상호 구별된다.

원칙적으로 호출대기시간은 근로시간으로 평가되지 않으며, 이에 따라 호출근로시간에 대하여는 임금지급의무가 없다고 본다. 왜냐하면, 호출대기의 경우는 근로자가 그 시간 동안을 자신의 필요에 따라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노사간의 유급에 관한 단체협약 상 합의가 존재하는 경우에는 당연히 임금이 지급된다.

참고로 최근 유럽법원" 은 호출대기시간여서 자유롭게 시간과 장소를 근로자 스스로 정할 수 있는 경우라도 사용자의 호출이 있는 경우 단시간 내에 일정지정장소에 도달해야 할 의무를 부여받은 경우에는 달리 볼 여지가 있다는 사례도 있다.

 

III. 입법정책적 개선과제

현행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대기시간은 근로시간 혹은 휴게시간이 되어야 하는 이분법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규율방식으로 인하여 대기시간이 때로는 사전에 예측하지 못한 임금부담으로 나타나거나, 장시간 근로에 대한 형사법적 책임문제 등이 발생하기도 한다. 원칙적인 근로시간도 휴게시간도 아닌 중간적 영역인 대기시간을 어느 한 개념으로 포섭시켜야한다는 점은 지나치게 경직적이라는 지적도 충분히 수긍이 가는 부분이 있다.

실제 산업현장에서는 대기시간을 둘러싸고도 노사간 법적 분쟁이 적지 않게 발생하고 있고, 이러한 상황을 고려해본다면, 경직된 대기시간의 개념을 보완하기 위한 입법정책적 개선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앞서 살펴본 독일의 경우, 대기시간을 일률적으로 정의하지 않고, 개념적 구분을 통해 대기시간의 성격에 따라 근로시간 등의 여부를 판단하고 있는 부분은 우리나라 근로시간법제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입법정책적으로 근로기준법에서도 대기시간을 근로대기 · 대기근로 호출대기의 개념으로 구분하고, 실질적으로 사용자의 지배 · 관리 하에 있는 근로대기 및 대기근로에 대해서는 실근로시간으로 판단하되, 업무의 부담과 강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특성을 고려하여 1주 12시간의 연장근로 제한 등의 기준을 완화시켜주는 방안을 고려해볼 수 있다. 아울러, 호출대기의 성격을 지니는 근로의 경우 원칙적으로는 근로시간으로 판단하지 않도록 하되, 별도의 금전보상 또는 휴식보상의 대상이 된다는 점을 명시하고, 노사 간 합의를 통해 보상기준 및 운영방식을 사전에 정해서 운영하는 방안을 고려해볼 수 있다.

근로시간법제에서도 새로운 규율을 적극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 앞으로 심도깊은 논의가 이루어지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