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Notice

이달의 포커스 - 최신판례해설 (2021년 12월 호)

작성자 관리자 | 날짜 2022.11.24

자살의 업무상 재해 여부

- 대법원 2021. 10. 14. 선고 2021두34725 판례 -

조성혜 (동국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I . 사건개요

원고의 남편인 망인(1958년생)은 1992. 8.26. 건설공사현장에서 작업 중 추락사고를 당해 '하반신 완전마비, 마비신경총손상, 신경인성 장 및 방광'으로 산재요양승인을 받았고, 장해등급 제1급 결정을 받았다.

이후 망인은 하반신 마비로 다른 사람의 도움이 없으면 체위 변경이 어려워 욕창이 생겨 '욕창'으로 1차 재요양승인을 받았고, 우울에피소드, 신체형 장애로 2차 재요양승인을 받았다(치료기간 2012. 12. 6.부터 2013. 3. 4.까지). 망인은 2013. 5. 14.부터 2018. 6. 26.까지 D병원에서 신체형 장애, 불안장애 및 우울장애로 지속적인 통원치료를 받았다. 망인은 우울감과 불면 등의 증상을 호소하였고, 항우울제 등의 약물치료를 받았다. 망인은 2017년 이후 비교적 안정적인 상태를 보였다.

망인을 간병하였던 원고는 2018. 7. 3.부터 2018. 8. 11.까지 약 40일간 늑골 골절 등으로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느라 망인을 돌보지 못하였다. 망인은 그 기간 중인 2018. 7. 27. 병원을 내원하였는데, 그 경과기록지에는 망인에게 욕창 증세가 있고 메디폼을 처방하였다고 기재되어 있다.

망인은 원고가 퇴원하고 8일이 지난 2018. 8. 19. 자택에서 목을 매어 자살하였다.

원고는 다음 날인 2018. 8. 20. 망인의 사망에 관한 경찰 조사에서 망인이 자살할 만한 이유에 대하여 '재작년 장애인스포츠 동호회 회장직에서 퇴출당하고 왕따도 당하여 괴로워했고, 술을 매일같이 마셔왔으며, 얼마 전 음주운전에 단속(면허 취소)되어 괴로워했다'고 진술하였다.

망인의 주치의는 망인의 증상이 점차 호전되어가는 양상이었고, 2018. 6.26. 실시한 마지막 진료에서 특이점은 관찰되지 않았으나, 망인의 우울증상이 악화되고 있었음에도 본인이 숨겼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원고는 망인의 사망이 업무상 재해로 인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유족급여 및 장의비의 지급을 청구하였으나, 피고인 근로복지공단은 2019. 5. 14. 망인의 사망과 업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원고에게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결정 처분을 하였다.

이에 대하여 원고는 서울행정법원에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소송을 제기하였다.

제1심은 망인이 기승인 상병인 하반신마비, 욕창, 우울증 등으로 정상적인 인식능력, 행위선택능력이나 정신적 억제력이 없거나 현저히 낮아져 합리적인 판단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자살에 이른 것이라고 추단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였다. 망인의 자살은 오히려 망인이 동호회에서의 갈등으로 사회적 교류가 상당 부분 단절된 데다가 사망 직전 음주운전으로 단속되어 운전면허가 취소되는 등 더 이상 운전을 할 수 없게 되면서 자유로운 거동이 어렵게 된데 기인한다고 보았다.

제2심인 서울고등법원도 제1심과 같은 이유로 원고의 항소를 기각하였다.

 

II.판결요지

대법원의 판결요지는 다음과 같다.

망인은 이 사건 추락사고로 30대의 젊은 나이에 하반신 마비가 되면서 휠체어 생활을 하였고, 하반신 마비로 발생한 욕창으로 10여 차례 입원 치료와 수술을 받는 과정에서 오랜 기간 상당한 고통에 시달렸다. 망인의 우울증은 이 사건 추락사고로 발생한 하반신 마비와 그로 인한 욕창 등에 기인한 것이고, 피고 또한 업무와 우울증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하여 망인의 우울 증세 등에 대하여 재요양 승인을 하였다.

망인은 2016. 3. 15.까지 우울증 치료를 받았고, 최종 진료일인 2018. 6. 26. 실시한 진료에서는 특이점이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망인의 주치의 소견과 같이 치료 경과 중 우울증이 악화되었으나 망인이 이를 숨겼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또한 위 최종 진료일과 망인의 사망일인 2018. 8. 19. 사이에 평소 자신을 간병하던 원고가 40일간 입원하여 평상시와 같은 간병을 받지 못하였고, 그 결과 자살 직전 욕창이 악화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망인의 우울증이 이 사건 추락사고로 발생한 하반신 마비와 욕창으로 유발 . 악화되었던 것임을 고려한다면, 원고의 입원 기간 망인의 우울증이 유발·악화되었을 개연성이 충분하다.

원고는 망인의 자살 직후 경찰 조사를 받으며 장애인 스포츠 동호인 협회에서 갈등과 음주 문 제, 음주운전단속을 망인의 사망이유로 언급하였으나 이는 망인의 사망 직후 원고의 추측에 따른 진술이다. 특히 동호인 협회에서의 갈등은 2년 전에 일어난 사건이므로 망인의 자살에 직접적인 동기를 제공했다고 보기 어렵다.

또한 동호회 회장에서 퇴출되었거나 음주운전 단속으로 면허가 취소되었다는 사정은 일반인에게 자살의 충분한 동기나 이유라고 할 수 없다. 오히려 위와 같은 사건으로 사회 활동에서 고립되고 이동이 제한된다는 사정은 하반신 마비로 장해가 있는 원고에게 더욱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따라서 망인의 자살직전 위와 같은 사정이 있었다고 해서 망인의 업무와 자살 사이의 인과관계를 부정할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망인은 업무 중 발생한 추락 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되었고, 오랜 기간 하반신 마비와 그로 인한 욕창으로 고통 받고 있는 가운데 우울증이 발생하였다가, 자살 직전 욕창 증세가 재발하여 우울증이 다시 급격히 유발· 악화되었고, 그 결과 정상적인 인식능력이나 행위선택능력, 정신적 억제력이 현저히 낮아진 정신장애 상태에 빠져 자살에 이르게 된 것이라고 봄이 타당하다.

 

III. 검토

1.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의한 자살의 업무상 재해 여부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하 "산재보험법"이라 한다) 제5조 제1호는 업무상 재해를 "업무상의 사유에 따른 근로자의 부상· 질병· 장해 또는 사망을 말한다"고 하고 있다. 그리고 같은 법 제37조 제1항은 업무상 재해를 업무상 사고, 업무상 질병 및 출퇴근 재해로 나누어 그 구체적인 인정기준을 정하고 있다. 다만, 같은 조단서에서 "업무와 재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없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고 하고 있다.

한편 산재보험법 제37조 제2항 본문에서는 "근로자의 고의 · 자해행위나 범죄행위 또는 그것이 원인이 되어 발생한 부상· 질병· 장해 또는 사망은 업무상의 재해로 보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의하자면 자살은 자해행위이므로 원칙적으로 업무상 재해로 인정되지 않는다. 다만, 같은 법 제37조 제2항 단서에서 "다만, 그 부상· 질병· 장해 또는 사망이 정상적인 인식능력 등이 뚜렷하게 낮아진 상태에서 한 행위로 발생한 경우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유가 있으면 업무상의 재해로 본다"고 하고 있다. 이에 따른 산재보험법시행령 제36조에서는 i) 업무상의 사유로 발생한 정신질환으로 치료를 받았거나 받고 있는 사람이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해행위를 한 경우(제1호), ii)업무상의 재해로 요양 중인 사람이 그 업무상의 재해로 인한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해행위를 한 경우(제2호), iii) 그 밖에 업무상의 사유로 인한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해행위를 하였다는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는 경우(제3호)를 자해행위에 따른 업무상의 재해의 인정 기준으로 규정하고 있다.

요컨대 산재보험법령에 의하여 자살이 업무상 재해로 인정되려면 i) 업무와 사망 간의 인과관계가 존재하여야 하고, ii) 자살이 정상적인 인식능력 등이 뚜렷하게 낮아진 상태(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한 행위로 발생하여야 한다.

 

2. 판례에 의한 자살의 업무상 재해 여부

판례는 자살의 업무상 재해 여부와 관련 다음과 같이 판시하고 있다. " '업무상의 재해'란 업무수행 중 그 업무에 기인하여 발생한 근로자의 부상· 질병· 신체장애 또는 사망을 뜻하는 것이므로 업무와 재해발생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있어야 한다. 그 인과관계는 이를 주장하는 측에서 증명하여야 하지만, 반드시 의학적 · 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증명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며 규범적 관점에서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는 경우에는 그 증명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근로자가 자살행위로 인하여 사망한 경우에, 업무로 인하여 질병이 발생하거나 업무상 과로나 스트레스가 그 질병의 주된 발생 원인에 겹쳐서 질병이 유발 또는 악화되고, 그러한 질병으로 인하여 정상적인 인식능력이나 행위선택능력, 정신적 억제력이 결여되거나 현저히 저하되어 합리적인 판단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의 상황에서 자살에 이르게 된 것이라고 추단할 수 있는 때에는 업무와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자살자의 질병 내지 후유증상의 정도, 그 질병의 일반적 증상, 요양기간, 회복가능성 유무, 연령, 신체적 · 심리적 상황, 자살자를 에워싸고 있는 주위상황, 자살에 이르게 된 경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야 한다"(대법원 1993. 12. 14. 선고 93누9392 판결, 대법원 2015. 1. 15. 선고 2013두7230 판결 등 참조).

판례의 이와 같은 기준에 의하여 자살이 업무상 재해로 인정되려면 i) 업무로 인하여 질병(과로 또는 스트레스)이 발생하고 ii) 그 질병으로 인하여 정상적인 인식능력이나 행위선택능력, 정신적 억제력이 결여되거나 현저히 저하되어 합리적인 판단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의 상황에서 자살에 이르게 된 경우여야 한다.

 

3.이 사건 자살의 업무상 재해 여부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산재보험법령이나 판례에 의한 자살의 업무상 재해 요건은 대동소이하다. 즉 자살이 업무상 재해로 인정되려면 i) 업무와 질병(장해) 간에 인과관계가 존재할 것, ii) 망인이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살에 이르렀을 것이라는 요건을 충족하여야 한다.

이 사건에서는 망인이 추락사고를 당함으로써 하반신 마비가 되어 욕창 및 우울증을 앓게 되었으므로 업무와 질병(장애) 간의 인과관계는 의심의 여지 없이 인정된다. 망인의 자살이 산재보험법령과 판례의 기준에 의하여 업무상 재해로 인정되려면 망인이 업무상 질병 및 장애로 인하여 자살에 이르게 되었고, 자살 당시 망인이 정상적인 인식능력이 뚜렷이 저하된 상태였어야한다.

사실관계에서 원고는 망인의 사망 이튿날 망인이 2년 전 장애인스포츠 동호회 회장직에서 퇴출당한 후 따돌림을 당하여 술을 매일같이 마셔왔으며, 음주운전으로 운전면허 취소가 되어 괴로워했다고 진술한 바있다. 이 진술을 기초로 한다면 망인의 자살은 사회적 고립감과 운전면허 취소 이후 자유로운 활동의 제한으로 인한 우울감에서 비롯된 것으로도 보인다.

제1심과 제2심(이하 "하급심"이라 한다)은 원고의 이 진술이 사망 직후 진술이라는 점에서 신빙성이 높다고 보고, 감정의의 소견인 '마지막 진료 전 몇 개월 동안의 진료기록에 안정적이라고 되어 있을 뿐 특이 내용은 없다. 2018. 6. 26.까지의 진료기록만 있어 망인의 사망 당시 정신 상태를 평가하기는 어렵다. 망인이 사망 당시 심신상실 내지 정신착란 또는 정상적인 인식 능력이나 행위선택능력, 정신적 억제력이 현저히 저하된 정신장애상태에 있었다고 볼 만한 근거는 없다'라는 판단에 근거하여 망인의 자살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할 수 없다고 하였다.

하급심이 업무상 재해를 인정하지 않은 근거는 아마도 망인이 추락사고를 당한 시점(1992. 8. 26.)과 사망한 시점(2018. 8. 19.) 간 약 26년의 시간이 경과하였다는 점, 그 사이 망인이 하반신마비, 욕창, 우울증 등으로 불편하긴 하였지만 일상생활을 영위하여 왔다는 점, 망인의 사망 직후 원고의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는 점 등에 비추어 볼 때 망인의 업무상 질병 및 장애와 자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할 것이다.

반면 대법원은 위 원고의 진술이 원고의 추측에 불과하고 이러한 사정은 일반인에게 자살의 충분한 동기나 이유라고 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특히 동호인 협회의 갈등은 2년 전 사건이므로 자살의 직접적 동기였다도 보기 어렵고 동호회 회장에서 퇴출되었거나 음주단속으로 면허가 취소되었다는 사정은 일반인에게 자살의 충분한 동기나 이유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망인의 주치의 소견과 같이 치료경과 중 우울증이 악화되었으나 망인이 이를 숨겼을 가능성이 있고, 최종 진료일과 망인의 사망일인 2018. 8. 19. 사이에 평소 자신을 간병하던 원고가 40일간 입원하여 평상시와 같은 간병을 받지 못하였고, 그 결과 자살 직전 욕창이 악화되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즉 망인은 업무 중 발생한 추락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되었고, 그로인한 욕창으로 고통 받고 있는 가운데 우울증이 발생하였다가, 자살 직전 욕창 증세가 재발하여 우울증이 다시 급격히 유발.악화되었고, 그 결과 정상적인 인식능력이나 행위선택능력, 정신적 억제력이 현저히 낮아진 정신장애 상태에 빠져 자살에 이르게 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즉 대법원은 망인이 우울증에 걸린 근본적 원인이 추락사고로 인한 하반신마비이고, 그로 인하여 욕창과 우울증이 유발 · 악화되면서 정상적인 인식능력이나 행위선택능력, 정신적 억제력이 현저히 낮아진 정신장애 상태에 빠져 자살에 이르게 된 것이라고 보고 있다.

하급심의 판단근거가 전혀 타당성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망인이 우울증으로 자살을 하게 된 과정을 추적해 보건대, 추락사고로 인한 하반신마비가 없었다면 우울증, 욕창도 없었을 것이고, 장애인 동호회에서의 갈등도 없었을 것이고, 음주운전으로 인한 운전면허 취소로 괴로워 할 이유도 없었을 것이고, 아내의 도움 없이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하였기에 아내의 입원시 욕창과 우울증이 악화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에 비추어 볼 때 망인의 업무상 질병·장해와 자살과의 상당인과관계를 부정하기는 어렵다 할 것이고, 또 그런 점에서 대법원의 판단이 설득력이 있다 할 것이다.

 

4. 보론: 정신적 이상 상태 요건의 문제점

산재보험법령은 고의 · 자해행위에 의한 사망은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지 않고 자살이 정상적인 인식능력 등이 뚜렷하게 낮아진 상태(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발생한 경우만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판례도 근로자가 자살행위로 인하여 사망한 경우에, 업무로 인하여 질병이 발생하거나 업무상 과로나 스트레스가 그 질병의 주된 발생 원인에 겹쳐서 질병이 유발 또는 악화되고, 그러한 질병으로 인하여 정상적인 인식능력이나 행위선택능력, 정신적 억제력이 결여되거나 현저히 저하되어 합리적인 판단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의 상황에서 자살에 이르게 된 것이라고 추단할 수 있는 때에 한해 업무와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 관계가 있다고 보고 있다.

이 사건에서 망인의 우울증이 자살에 이르게 된 동기였다는 데 대하여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문제는 망인의 우울증이 업무에 기인하였느냐 여부였다. 하급심은 망인의 우울증과 하반신마비 · 욕창의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면서 동시에 망인의 정신적 이상 상태를 부정하였고, 대법원은 양자간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면서 망인의 정신적 이상 상태를 함께 인정하였다. 다시 말해 업무와 자살 간 인과관계가 인정되면 망인의 정신적 이상 상태도 인정되었고, 그렇지 않으면 정신적 이상 상태도 함께 부정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자살이 업무상 재해로 인정되기 위한 요건이 자살과 업무와의 인과관계임에도 불구하고, 판례가 정신적 이상 상태 여부를 '꼬리표'처럼 언급하고 있는 이유는 산재보험법 제37조 제2항 단서와 같은 법시행령 제36조가 자살의 업무상 재해 기준으로 정신적이상 상태를 요건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사건에서 망인이 우울증으로 자살을 한 사실 자체는 망인의 자살을 업무상 재해로 보든 그렇지 않든 동일하다. 그리고 자살의 원인이 된 망인의 우울증이 하반신 마비, 욕창 등에 기인한 것이라면 업무기인성이 인정되어 업무상 재해가 인정되는 것이고, 동호회로부터의 따돌림 및 운전면허 취소 등으로 인한 사회적 고립감에서 온 것이라면 업무기인성이 부정되어 업무상 재해도 부정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 판례를 포함한 업무상 자살 관련 기존 판례들은 지속적으로 업무기인성이 인정되면 정신적 이상 상태를 인정하고, 업무기인성이 부정되면 정신적 이상 상태를 부정하여 왔다. 마치 자살 직전 망인의 정신적 이상 상태가 업무기인성 여부에 따라 좌우되는 것과 같은 형국이다.

이같은 현실에 비추어 볼 때 현행 산재보험법 제37조 제2항이 고의 · 자해행위에 의한 사망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지 않으면서 정상적인 인식능력의 결여 내지 정신적 이상 상태 요건을 갖춘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업무상 재해를 인정하는 방식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자살은 당사자의 자유의지에 의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는 행위로서 기본적으로 고의 및 자해행위에서 비롯된 결과이다. 우울증에 의한 자살이 고의에 의한 것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 이렇게 고의를 전제로 한 자살에 대하여 정신적 이상 상태라는 기준으로 '면죄부'를 주려다 보니 법과 현실의 괴리가 발생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법령과 판례가 언급하고 있는 정신적 이상 상태인) 우울증이 업무에 기인한 것인지 아닌지 여부이지,자살이 우울증에서 감행된 것인지 아닌지 여부가 아니다. 따라서 사견으로는 산재보험법 제37조 제2항이 현행법의 '공식'을 벗어나 업무와 자살 간의 상당인과관계에 초점을 맞추어 좀 더 정치하게 규정하는 것이 현실적이고 타당하다고 본다.